한나라와 싸우다.
'전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어, 백성들은 지치고 나라의 형평은 말이 아니구나.'
먼 산을 바라보며 고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던 성기는 지난 일 년여 동안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한나라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서기전 109년 가을이었습니다.
한나라는 5만 명이 넘는 군대를 보내 고조선을 공격해 왔습니다.
고조선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고 고조선으로 도망가서 사는 한나라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데
불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나라가 가장 무서워하는 적인 흉노와 고조선이 서로 교류를 하는 것을 보자
고조선을 더욱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아서라도 고조선을 혼내 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기회가 왔습니다.
한나라 사신 섭하가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편지의 내용이 너무나 무례하고 말도 안 되어 고조선 왕이 편지를 받지 않고 다음 날 사신을 한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섭하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국경선까지 자신을 호위해 준 고조선의 장수를 죽이고
강을 건너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중국 왕은 섭하를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벼슬을 내려 주었습니다.
고조선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고조선의 신하와 백성들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곧장 한나라를 공격하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왕도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고조선의 용감한 병사들은 요동을 공격하여 섭하를 죽이고 원수를 갚은 뒤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습니다.
한편 자존심이 크게 상한 한나라는 즉시 고조선과 전쟁을 일으켜
그 뒤로 일 년여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고조선은 군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한나라 군대는 금방 끝내겠다는 자신감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일 년 넘게 고조선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나라의 많은 장군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한나라가 물러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나라가 힘으로 고조선을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하자
많은 재물과 벼슬을 미끼로 몇몇 신하들을 지기들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성기에게 갑자기 다급하게 자신을 찾는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기를 모시고 있는 하인의 목소리였습니다.
한음, 왕겹을 비롯한 몇몇 신하들이 폐하를 살해하고 한나라에 항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기는 곧장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조정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성기는 침착하게 대신들을 모으고 대책을 논의하였습니다.
왕이 죽자 모든 백성들을 겁에 질렸고 군대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이 틈을 이용하여 한나라 군대가 고조선의 서울인 왕검성을 향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고조선 사람들은 성기를 중심으로 있는 힘을 다 해 싸웠지만
세찬 기세로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한나라 군대를 막아 내기에는 힘이 모자랐습니다.
성기는 한나라 군대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과 군사들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고조선과 운명을 같이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세운 나라인 고조선은 아쉽게도 역사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한나라는 고조선 땅에 4개의 군현을 설치하였습니다.
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이 그것입니다.
이 4개의 군현 가운데 3개는 30년도 채 되지 않아 고조선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 없어지거나 멀리 요동으로 쫓겨났으며 낙랑군만이 313년까지 한반도에서 그 명맥을 간신히 지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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