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류운류운이 보는 역사

삼한시대 마한 진한 변한

고조선 주변 나라

위키피디아

고조선이 위세를 떨치고 있을 무렵 북쪽에는 부여가 있었고 남쪽에는 삼한 세력이 막 움트고 있었습니다.

만주 쑹화강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던 부여는 왕과 마가, 우가, 저가, 구가로 불리는 귀족들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아직 완전히 분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인 동시에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자였습니다.

 

그런데 부여에는 특이한 풍속이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들어서 농사가 흉년이 들면 그것을 모두 왕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왕을 쫓아 내고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거나 어떤 때는 왕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왕이 고대 국가의 왕처럼 강력한 권력을 지니지 못하였기 떄문이었습니다.

 

부여에도 고조선과 비슷한 법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시키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으며 도둑질을 하면 열두 배로 갚아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촌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사회 계급은 대가(귀족), 하호(평민), 노비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음력 12월에는 백성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즐겼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며칠 동안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겼습니다.

또 이 때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 축제를 영고라고 불렀습니다.

 

부여는 고구려의 힘이 강해지자 한때 중국과 힘을 합쳐 고구려를 누르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여는 346년 연나라의 침입을 받고 세력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그 뒤 부여 땅은 문자명 왕이 정복하여 모두 고구려 땅이 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

고조선 남쪽에서는 삼한이 나타났습니다.

삼한은 한 개의 큰 나라가 아니라 마한, 진한, 변한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마한은 지금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은 각각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져

마한에 54개, 진한에 12개, 변한에 12개의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나라들에는 많게는 1만 명, 적게는 2천명~ 3천명의 인구가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기름진 땅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누에를 쳐서 실을 뽑아 옷을 해 입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5월에 씨뿌리기를 마친 뒤 모두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밤낮으로 즐겼습니다.

또 10월에는 수확을 감사드리는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즐기며 놀았습니다.

 

삼한에는 천군이 살면서 제사를 지내는 곳인 소도가 있었습니다.

소도에는 높은 나무를 세우고 방울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소도로 도망가면 함부로 잡으러 들어가지 못할 만큼 소도는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나무위키

만한, 진한, 변한은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을 하나로 묶은 연맹체 국가였습니다.

마한 연맹체는 뒷날 한강 유역에 있던 백제국을 중심으로 백제로 발전하였고

진한은 경주 지역의 사로국을 중심으로 신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변한은 고대 국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야 연맹체 단계에서 신라에게 정복되어 그만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