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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운류운이 보는 역사

농업, 농사와 샤머니즘의 뜻 씨족의 대 족장의 이유는 무엇일까??

씨 뿌려 지은 농사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요?

돌을 깨어 도구로 사용하다가 돌을 갈아서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토기를 발명하여 사용한 점입니다.

 

처음에 신석기 사람들은 우연히 떨어진 씨앗이 이듬해 새로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직접 씨앗을 뿌려 가꾸면 더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연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곡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곡식을 생산하였습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생활도 달라졌습니다.

 

씨앗을 뿌려 곡식을 거두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곡식이 자라는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살면서 자기가 뿌린 씨앗이 잘 자라는지 돌보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정착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럿이 모여 살면서 차츰 인구가 늘어나자 자연히 마을도 생겨났습니다.

신석기시대 후기가 되면서 개, 돼지, 소 등의 가축도 길렀습니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힘들게 사냥할 필요 없이 사로잡은 동물을 우리 속에 가두고 키워서 필요할 때 잡아먹은 것입니다.

사냥을 나가는 일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농사일에 더 정성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바닷가나 강가에서 움집을 짓고 생활하였습니다.

바닷가나 강가와 같은 평지에 집을 지은 이유는 낚시나 그물을 사용하여 고기잡이를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동굴이나 큰 바위 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움집은 땅을 파고 위에 지붕을 얹어 만들었습니다.

지하나 반지하식으로 움집을 만들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움집에서는 약 다섯 명의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세 명의 자식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사회를 씨족 사회라고 하는데 한 마을을 이루는 씨족 전체가 함께 농사짓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였습니다.

 

몇 사람만의 힘을 모아 살아가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신석기 사람들은 때때로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산이나 들에 불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산이나 들에 불을 놓으면 나무나 풀이 타서 재가 생기는데 이것이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은 비옥해진 땅에 농사를 짓다가 수확량이 적어지면 다른 곳에 다시 불을 놓아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는 나무나 뿔 돌로 만든 기구를 사용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오면 농사를 망치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습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모든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큰 바위나 산 같은 곳에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소망을 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가 서기전 8000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부산 동삼동,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서울 암사동 유적 등이 있습니다.

 

평등한 사회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는 어느 누구 한 사람이 특별히 재산이 많거나 특별히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지어 해마다 양식을 얻었지만 씨족 전체가 먹고 살기에는 늘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씨족은 다 함께 농사를 지어 거둬들인 곡물과 사냥이나 고기잡이로 얻은 것을 모두 똑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자기 몫을 따로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더 많이 가지는 사람과 더 적게 가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개인 재산도 없었습니다.

처음에 농사일은 주로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곡식을 거두고 일 년 동안 먹을 식량과 다음 해 농사에 쓸 씨앗을 저장하였습니다.

이때 곡식을 담아 두는 토기도 주로 여자들이 만들었습니다.

 

식물의 줄기로 베실을 잣고 베옷을 만드는 일도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다 신석기시대 말에 이르러 남자들도 사냥보다 농사일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집에서 꽤 먼 곳까지 나가 밭을 일구고 괭이나 보습 같은 농기구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 때부터 힘든 농사일은 주로 남자가 맡고 여자는 집안일과 아이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나누어지고 씨족 안에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씨족 안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였습니다.

만약 씨족에서 의논할 일이 생기면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에 따랐습니다.

 

씨족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씨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씨족의 지도자는 주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다툼이 있을 때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억누르며 다스리는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원시 사회였지만 늘 닥쳐오는 추위와 굶주림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원시인들은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옷도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농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곡식을 많이 생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한 해 농사를 망쳐 굶주리는 날이 많았습니다.